새로운 창의성을 꿈꾸며
: “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살자’라는 슬로건의 유효기간
2024년은 하자센터가 설립된 지 25년이 되는 해입니다. 1999년 설립 이후 한동안 하자센터에서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자’라는 슬로건이 많이 쓰였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냐’며 사회의 관행과 규칙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잘 살 수 있어’라며 서로에게 용기를 건네는 곳이 하자센터였던 것이죠. 그 이면에는 다르게 생각하고 실행하는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면 기존 사회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하자를 다녔던 청소년들 중 몇몇은 한국의 문화산업을 대표하는 작가, 감독, 기획자 등이 되어 멋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3년 <청소년 참여 브랜딩> 사업에서 진행한 직업인 인터뷰 프로젝트의 제목은 ‘괜찮을까? 하고 싶은 일 계속해도’였습니다. 하자센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다양한 분야의 직업인들 12명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일과 삶을 구성해나가는 멋진 모습을 담았는데도, 인터뷰집의 제목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살자’라고 짓지는 못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진 마음의 온도와 너무 다를 것 같았기 때문이죠.
생성과 창의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의 진로
2020년대를 사는 청소년들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 느끼고 있을까요? 창의적 작업역량을 기반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걸까요? 생성과 창의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 인간 간 협력이 AI와의 소통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시대, 대부분의 인간 활동이 지구를 아프게 하는 시대에, 우리의 일과 작업은 어떤 방향과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지금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거칠게 표현하자면 하자센터 설립 초기였던 2000년대에는 우리 사회가 이른바 ‘3차 산업혁명’ 시기를 지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의 방향으로 경제 시스템이 재편되고 있었고, 이와 함께 개인의 창의성과 뾰족한 취향이 중시되는 문화사회화가 이뤄지는 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산하는 비주류적 콘텐츠나 상품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아주 많지 않더라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글로벌-사이버(온라인)’ 공간에서 소비자들을 만날 수 있다면 판매량을 충분히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죠. 혹은 추가 생산 건당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지는 ‘비물질(디지털) 상품 생산과정’을 통해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행복해지는 삶’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성찰적인 개인/시민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사회는 꽤 멋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자센터의 두 번째 10년은 조금 달랐습니다. 2010년 전후, 예상했던 방향으로만 사회가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하자센터는 ‘개인적 창의성’을 넘어서는 ‘사회적 창의성’에 주목하게 됩니다. 창의적 활동을 통해 돈을 벌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사회적경제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을 실험해보았습니다. 하자 초기부터 함께한 작업장학교뿐 아니라 로드스꼴라(여행,인문학), 유유자적살롱(음악,관계), 영셰프스쿨(요리), 연금술사 프로젝트(자립,창업), 목화학교(갭이어), 오디세이학교(갭이어,진로탐색) 등 다양한 목적의 대안학교가 그런 사회적 창의성이라는 토양 속에서 자라났고, 공교육 재학생을 포함해 수많은 청소년들이 하자센터를 통해 새로운 배움과 새로운 진로를 만들어갔습니다.
개인적 창의성과 사회적 창의성을 넘나들며 연결하는 ‘제3의 장소’
물론 이런 노력들이 전체 사회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알고리즘이나 빅데이터가 사람의 취향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초개인화 시대, 그리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그룹과는 영영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파편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vid-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간 동안, 우리는 ‘사회라는 것 자체와 거리를 두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아동과 청소년들은 한창 사회화가 진행될 시기에 마스크와 비대면 수업 때문에 소통과 관계역량이 저하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줄 알았던 기성세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2019년에 열린 하자 20주년 기념 포럼의 제목은 ‘연대하는 개인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하여’였는데, 5년이 지나 다시 꺼내 보니 이 문장에 담았던 의미가 조금 더 절실해집니다.
초개인화, 파편화 시대를 위한 ‘좋은 삶’의 모습은 각각의 존재를 존중하며 연대함으로써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25주년을 맞이하며, 하자센터는 청소년이 새로운 창의성을 경험할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되고자 합니다. 성취를 향한 ‘개인적 창의성’과 합의된 가치를 구현하는 ‘사회적 창의성’, 그 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스스로 연결하는 창의적 공간 말이지요. ‘각자의 의미 있는 작업’을 응원할 수 있는 존중과 친절함이 살아있는 공간, 올해는 그곳의 문을 활짝 열어볼 테니 한 번쯤은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자센터 기획부장 아키 드림 |